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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 5.18 당시 박근혜, 김무성 도청 앞 시위 군중에게 백린포탄을 발포하여 150여명을 살육하다. 1980년 5월 19일 밤 12시 광주공설운동장에 요란한 굉음을 내는 대통령 전용헬기가 착륙하였다. 헬기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장세동이 내렸다. 박정희 일행은 전남도청을 잠시 들러 도지사로부터 상황보고를 받고 조선대에서 12시간 머물다 5월 20일 13시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1중대 부대원들이 정비한 전남대 특전공수부대 주둔지로 이동하였다. 전남대는 5.18 진압작전이 끝날 때까지 지휘본부가 되었다. 조선대에 2군단 특전공수여단 701특전공수연대(강원도 춘천 사창리 인근)1대대가 주둔하였다. 당시 701연대장이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인 이종찬 이었다. 당시 이종찬 대령은 조선대 무역학과 학생회의실에서 부하간부 10여명(이병기 중사 등)이 여대생 15여명을 집단강간을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후 이종찬 대령은 ROTC 학군단 장교출신으로 대한민국1호 장성이 되었다.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이 박세직( 1988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준장이었다. 박세직은 1973년 4월~1974년 9월까지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이었던 전두환 준장의 참모였던 인연으로 전두환이 명하여 1980년 광주 5.18 진압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통령 문재인( 1974년~1977년 3월까지 군복무)은 특전사령부 예하부대에서 대학 재학시 학생운동 전력으로 2군단 특전공수여단으로 전출되었다. 1974년 7개월간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 전두환의 관사 당번병으로 보직 받아 이순자의 관사 가사도우미로 복무하였다. 전남대에 주둔한 당시 702특전공수연대장이 최세창(본적: 경북 김천, 전 국방장관) 대령이었다.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강원도 춘천 오음리) 부대장 김진현(본적: 경북 청도, 육사 25기, 육군사관학교 일반대학 의탁교육 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대학교에서 2년 수학하였다. 인터넷에 뜨는 경력사항에 서울대학교 졸업이라고 허위기재하였다. 1988년~1993년까지 안기부 제3국 과장에서 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서울시립대 총장이 되었다.)중령이었다. 당시 1대대 1중대 1소대장이 김관진(본적 : 전남 광양, 전 국방장관)중위였다. 특전공수부대원들은 부대명칭을 표시하는 비표와 관등 성명을 떼고 작전에 참여 하였다. 현재 광주 5.18 재단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대부분 위조된 것들이다. 박정희는 미국에서 귀국하는 대한항공기 기내에서 1980년 5월 19일 01시부터 실탄지급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전두환은 시위진압작전의 총사령관인 박정희를 총통각하로 예우하고 자신은 사령관각하로 불리었다. 1980년 5월 20일 밤 21시경 최세창 대령, 장세동 보안사 작전참모장과 박근혜 외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1중대 1개 소대가 전남도청 탈환목적으로 도청에 접근하였다. 전남도청탈환기습작전이었다. 도청정문에서 보초를 서는 한 시민군이 공수부대에게 칼빈총 4발을 격발하였다. 공수부대원 2명이 사망하고 탄환 1발이 공수부대원 옆에 서 있던 박근혜의 어깨를 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박근혜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자 최세창과 공수부대원들이 전남대로 퇴각하였다. 박근혜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박정희는 분노에 휩싸여 그 이후로 시민군에 대한 총살을 명령하였다. 대량학살의 시발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총상을 입은 박근혜를 치료하기 위해 전남기독병원 의료진이 왔다. 기독병원 의료진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전두환은 그 순간을 옆에서 지켜봤다. 1980년 5월 21일 아침 9시 전남대 부근으로 공수부대를 쫓아온 시위대에 격분한 박정희는 검붉은 양복을 입은 채로 M16소총으로 총알이 없는 칼빈 소총을 들고 도망하는 시민군과 시위대를 향하여 조준사격하여 30여명을 사살하였다. 전두환은 박정희 옆에서 탄창을 준비하는 등 박정희를 보조했다. 당시 M16소총을 소지한 5.60대의 키작은 남성과 장교복을 입은 전두환을 목격한 목격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한사람이 현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소강석이다.
(2019년 03월 13일 20시 41분 조회: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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